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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민비 그리고 민자영

박동서 2018. 2. 22. 11:30

쓸쓸한 달빛아래

내 그림자 하나 생기거든

그땐 말해 볼까요 이 마음

들어나 주라고

문득 새벽을 알리는

그 바람 하나가 지나거든

그저 한숨 쉬듯 물어 볼까요

난 왜 살고 있는지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서 살아야 하네


조수미가 부르는 "나 떠나거든"의 일부분입니다.

참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노랫말인데 세계최고의 가수가 부르는 노래.



세종문화회관에서 또 개봉하는 뮤지컬입니다.


그녀는 과연 명성황후 일까요?


사실 그녀는 대한제국이 선포되기 전 민비 중전일때 을미사변이 일어 났습니다.

명성황후는 사후 추증입니다.


그러면 명성황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녀는 여흥민씨 민치록의 딸입니다. 


민치록은 숙종의 비 인현왕후 민씨의 부 민유중의 5대 손입니다.

시어머니 즉 흥선대원군의 부인이고 고종의 어머니도 여흥민씨 입니다.


민씨는 태종의 부인인 원경왕후의 아버지 민제 때부터 조선의 가장 큰 족벌 집단 중 하나 였습니다.



민자영 민비의 행적을 보면


1. 임오군란으로 민씨 일파가 권력에서 밀려날때 청나라를 끌어 들였습니다.

  임오군란 전에 민씨 일파는 1000여명이 국가의 요직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권이 떨어져 나갈 것을 우려하여 청군을 이나라에 끌어 들였습니다.


2. 민비가 끌여들인 청일 전쟁의 폐해

매천야록에서 황현은 평양성에서 청일전쟁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 이 전쟁에서 왜인은 모든 군수물자를 다 자기 나라에서 수송해 왔는데, 시탄까지도 그랬다. 저들은 이르는 곳마다 물을 사서 마셨고, 군령이 매우 엄격하여 우리 백성은 일본 군대가 와 있음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모두를 기꺼이 그들의 위해 향도가 되었다. 반면 청인은 음행과 약탈을 자행하고 날마다 징발을 일삼아 관과 민이 모두 곤란을 당하여 그들을 원수보듯 했다. 평양이 포위되자 문을 열고 일본군을 인도한 자도 있었고, 청군이 패양 도망가 숨어 있으면 성 안 백성이  그 숨은 곳을 알려주니 벗어난 자가 드물었다.'

그리고 다시 러시아를 이 땅에 끌어 들였습니다.

3. 국가 예산의 20%를 개인의 사치나 사적인 일에 사용한 민자영

  친정조카 민영익이 갑신정변의 부상에서 치료되었을때 알렌에게 10만냥(50억) 지급
  릴리어스 언드우드 왕실양의의 결혼식에 100만냥 부조
  

이런 일을 저지런 민비, 민자영 입니다. 

그녀가 명성황후가 되어야 할까요?


드라마, 뮤지컬, 영화등이 그녀를 명성황후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한번도 조선의 인민을 위한 적이 없습니다.


조선의 모든 백성들이 하루 먹을것만 있으면 더 이상 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민씨 일파와 관련된 관리들이 뺏어가가 때문이었습니다.



비숍여사는

한국인은 영리하고 근면하다. 그러나 굶주림을 면할 만큼의 잉여재산만 있으면 바로 수탈해 가는 흡혈귀, 기생충같은 지배계급 때문에 하루 먹을 만큼의 돈만 벌고 놀았다고 한다. 즉 부를 축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조선의 발전에 지배계급이 얼마나 해악을 미치는 지를 정말 자세히 적고 있다. 관료, 지방관리들은 면허받은 흡혈귀, 기생충으로 표현했다. 이런 지배층이 없는 한국인들은 척박하고 기반이 없는 러시아에서 중국인 상인이나 러시아인을 능가한다고 봤다.




하지만 이런 비숍여사도 위의 책에서 민비에게는 좋은 평가를 하고 있다.

왕비는 마흔 살을 넘긴 듯햇고 퍽 우아한 자태에 늘씬한 여성이었다. 

대화에 흥미를 가지면 얼굴은 눈부신 지성미로 빛났다. 


비숍여사가 민비에 대해서 그나마 좋은 평가를 내린것은 

그녀도 민비에게 많은 사례금을 받지 않았나 추측이 됩니다.